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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3월 3일 동남아 한 개발도상국.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 소속 해외봉사단원인 여성 A씨가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같이 일하는 남성 B씨였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너무 예뻐서 같이 자려고”라고 했다. “무슨 소리냐. 나가라”고 했지만 B씨는 “우리 키스라도 할까. 뽀뽀만 하자”며 다가와 A씨 다리를 만졌다.파워볼실시간

#2. 2017년 6월 중동 지역 한 코이카 사무실. 코이카 현지 여성 직원이 결재를 받으려는데 코이카 소장 C씨가 덥석 손을 잡더니 “아름다운 반지를 끼는 만큼 사무소도 더 아름답게 꾸미라”며 손을 계속 주물렀다. 비슷한 시기, 다른 현지 여성 직원에게는 “차량 뒷좌석에 앉으라”고 하더니 그 옆에 앉아 허벅지를 누르듯 만졌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코이카 해외봉사단 징계 현황(2017~2020년)'에는 성희롱·근무 태만 등의 징계 사례가 있었다. [중앙포토 자료 사진]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코이카 해외봉사단 징계 현황(2017~2020년)’에는 성희롱·근무 태만 등의 징계 사례가 있었다. [중앙포토 자료 사진]


23일 코이카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해외봉사단원 및 임직원 징계 현황’에 나온 사례 중 일부다. 첫 사례의 피해자 A씨는 B씨가 성희롱을 했다고 신고했다. 코이카는 내부 조사를 한 후 A씨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판단해 징계(계약 해지)를 내렸지만 B씨는 자격 박탈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성희롱의 판단 근거가 그녀의 진술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법원 역시 지난 7월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다리를 만지고 여러 차례 ‘뽀뽀를 하자’고 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청구 기각)했다. “계속 거부하니 B씨가 ‘머쓱하게 왜 그러냐’고 되려 물어봤다”, “숙소 앞에서 ‘네가 때로는 어리게 보이는데 때로는 성숙하게 보여서 그런 행동을 했다’라고 했다” 등 A씨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다고 본 결과였다.

2017~2020년 징계를 받은 코이카 임직원은 총 22명이었다. [중앙포토 자료 사진]
2017~2020년 징계를 받은 코이카 임직원은 총 22명이었다. [중앙포토 자료 사진]


태 의원이 공개한 판결문에는 둘이 사건 직후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도 있었다. 남성 B씨는 “스스로 극도로 흥분하고 많은 상상으로 나의 자아를 상실한 행동에 너를 대할 수 없어 만나지 않겠으니 여행 잘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다음 날 A씨는 “끔찍하다.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FX시티

두번째 사례의 가해자 C씨는 해임됐다. KOICA 특별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C씨는 혼자 쓰는 사무실에 결재를 받으러 온 현지 여성에게 “내 옆으로 와서 모니터를 함께 보자”며 손을 잡는가 하면, 행사 때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밀착하는 등 추행했다. 코이카 감사보고서에는 “C씨는 냄새와 소리에 민감해 사무소 건물을 공유하는 코트라(KOTRA) 측에 일체의 소리 및 조리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냄새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담겨 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뉴스1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뉴스1


지난해 동남아 한 국가에서 일한 D씨는 138일 중 85일의 근태가 누락됐다. 동료직원들은 자체 감사에서 “’보모’, ‘유치원’ 등의 사유로 사무소에 정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무실 이전으로 인한 새집 증후군 때문에 사무소 밖에서 일한다고 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 이에 D씨는“카페나 인근 쇼핑물에서 근무했다”고 주장했고 코이카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태 의원은 “코로나 19 사태로 해외 사무소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해질 수 있다”며 “외교부와 코이카는 성범죄, 갑질 등 각종 비위 사례 발생 시 이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이카는 2017년 10명(해임1·강등1·감봉3·견책5), 2018년 7명(해임1·감봉3·정직2·견책1), 2019년 4명(정직2·감봉2), 2020년 1명(감봉1)을 징계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사건추적]

동반자살 이미지. 연합뉴스
동반자살 이미지.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4일 동대구역. 20대 후반~30대 초반 성인 남녀 3명이 전국 각지에서 KTX를 타고 도착했다.파워볼게임

이들이 KTX에서 내려 각자 이동한 곳은 대구 달성군 구지면의 작은 빌라. 빌라에 살던 변모(29)씨는 이들이 각자 문을 두드릴 때마다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생면부지 남녀 4명이 얼굴을 마주한 목적은 딱 하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혼자 하기가 무서워서다. 변씨가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함께할 사람을 찾았다. 게시글에 ‘OOOO(동반자살을 암시)’ 해시태그(#)를 달았다.

다른 사람은 포털에서 해당 문구를 검색했다가 변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발견했다. 이들은 각각 변씨의 글에 ‘진지하게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라거나 이와 비슷한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통성명했다.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그램 아이디를 주고받은 뒤, 카카오톡으로 극단 선택을 모의했다. 변씨가 자신의 집을 장소로 제공하고, 다른 사람이 도구를 준비하는 내용이었다.


SNS로 극단 선택 모의한 2030

SNS에서 동반자살자를 모집하는 사람들. [트위터 캡쳐]
SNS에서 동반자살자를 모집하는 사람들. [트위터 캡쳐]

4명은 이날 변씨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요즘 2030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 쯤 고민했음 직한 이유를 서로 털어놨다. 서울에서 온 최모(24) 씨는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어려운 상황에서 힘겹게 번 돈을 믿었던 친구에게 떼였다. 사기 피해를 본 뒤 제대로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경주에서 찾아온 서모(31)씨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한 30대였던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실직하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장소를 제공한 변씨는 이혼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경기도 여주에서 온 송모(22)씨는 우울증을 앓았다. 이들 중 가장 어린 데다 부모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꽤 잘 산다는 인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송씨의 극단 선택 동기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자살 내몰리는 20대. 그래픽 김영희 기자
자살 내몰리는 20대. 그래픽 김영희 기자

이들은 자정 무렵 약속대로 계획에 착수했다. 변씨가 작은 방 한가운데 한 물체에 불을 붙였다. 함께 잠을 청했지만, 연기는 생각보다 독했다. 4명은 콜록거리며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변씨만 숨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산으로 올라가면 저체온증으로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막상 올라갔더니 너무 추워서 다시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살아남은 뒤로도 서로 다른 길

자살 사망률 추이. 그래픽 김영옥 기자
자살 사망률 추이. 그래픽 김영옥 기자

얼어 죽는 데 실패한 이들은 다시 변씨 빌라로 돌아왔다. 재차 극단 선택을 시도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씨는 이 와중에 친구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명은 이미 죽었고, 우리도 곧 죽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최씨 친구의 제보를 받은 대구달서경찰서는 즉시 빌라를 찾았다. 현장 도착 당시 변씨는 이미 작은방에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최씨·서씨는 연기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송씨는 거실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경찰은 무료 숙식을 제공하고 자활을 돕는 기관에 이들을 넘겼다. 당시 출동한 서태규 달서경찰서 형사과 형사 등은 “아직 젊은데 열심히 살라”며 집으로 돌아갈 교통비까지 쥐여주며 달랬다.

사망자를 제외한 이들은 모두 변씨 자살을 방조한 죄목으로 기소됐다. 살아남은 이후에도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경찰 관계자는 “송씨는 다시 가출해 극단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면 최씨는 주민센터 직원 도움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씨는 병원 치료를 마친 뒤 가족에게 넘겼다. “가끔 안부 전화가 오는 것을 보니 서씨가 잘 사는 것 같다”는 것이 서 형사의 얘기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올해 극단 선택을 시도한 사람은 1만5090명이었다(1~8월 기준). 이 중 20대가 28%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2951명) 대비 올해 자살 시도 증가율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43%).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이하 현지시간) 대선 마지막 TV토론 도중 인도의 나쁜 공기 질을 언급한 가운데 23일 아침 수도 델리 도로에 출근길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가득하다.델리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이하 현지시간) 대선 마지막 TV토론 도중 인도의 나쁜 공기 질을 언급한 가운데 23일 아침 수도 델리 도로에 출근길 차량과 오토바이 행렬이 가득하다.델리 로이터 연합뉴스

정말 이들 나라 국민들, 기분 더러울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마지막 TV 토론 도중 인도와 중국, 러시아의 공기가 더럽다고 꼬집어 ‘의문의 1패’를 안겼다. 그는 “중국을 봐라. 얼마나 더럽나. 러시아를 봐라. 인도를 봐라. 더럽다. 공기가 더럽다. 몇 조달러를 쓰고도 아주 불공정한 취급을 당했기 때문에 나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고 발언했다.

많은 인도인들은 화를 냈는데, 일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돈독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공기 질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요청했다고 영국 BBC가 23일 전했다. 물론 모두 수도 델리의 공기 질이 세계에서 가장 나쁘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지난 몇주 델리의 주민들이 숨을 쉬는 데 힘이 든다고 호소할 정도로 공기 질이 심각해졌다. 코로나19로 봉쇄됐다가 최근 경제활동이 본격 재개되면서 델리의 공기 질은 세계보건기구(WHO) 안전 기준의 12배에 이를 정도로 다시 나빠졌다. 북부 여러 도시들은 여러 요인이 겹쳐 일부 의사들이 “독가스 칵테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탄식할 정도다.

이날 아침 미국 대선 TV 마지막 토론이 끝난 뒤 인도인들의 트위터 인기 유행어는 “더럽다(filthy)”와 “어이! 모디(Howdy! Modi)”였다. ‘어이! 모디’는 지난해 9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5만명 가까이 모인 행사였다. 미국에서 외국 지도자가 연 피로연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대하게 역사적인 행사”라고 치켜세웠다.

인도 야당인 의회당 지도자인 카필 시발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공기에 대한 언급이 두 나라 지도자들의 “우애의 산물”과 ‘어이! 모디’의 결과냐고 물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를 답방했을 때도 모디 총리는 “좋은 친구”를 위해 크리켓 경기장에서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대형 피로연을 베풀었는데 이런 힐난이나 듣고 있다는 탄식이었다.

작가 키란 만랄은 트위터에 “공기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독성 수준에 이르고 있다”면서 “헐뜯었다고 화를 내지 말고 우리 주변을 깨끗이 하고 공기를 깨끗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안되겠나? 그러면 누구도 그런 소리 함부로 못할 텐데”라고 적었다.

최근 몇몇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데 공기 오염이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24일 오전 5시 30분(한국시간) 집계에 따르면 776만 1312명의 누적 감염자와 11만 7306명의 사망자로 각각 세계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에서는 공기 오염 소식이 코로나 차단을 위해 애쓰는 방역 대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고려대 명물 영철버거 20주년, 이영철 대표

지난 14일 점심시간 고려대 앞 ‘영철버거’. 위생 두건을 두른 사장 이영철(52)씨는 학생들에게 버거를 내고 있었다. 주방에서 혼자 버거를 만들고 있는 사람은 아내 이계숙(53)씨. 30평 가게를 두 부부가 주 7일 운영한다고 했다. 이영철씨는 “매일 오전 9시에 일어나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장사하고, 4~5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간다”면서 “그래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다.

5년 전, ‘고대 명물’이라던 영철버거 본점이 폐업했다. 1000원짜리 버거를 파는 리어카 노점에서 시작해 한때 전국에 80여 가맹점을 냈고, 2004년부터는 고려대에 매년 2000만원을 기부했을 정도로 성공했던 영철버거였기에 폐점 소식은 학생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얼마 후, 고려대 학생들이 영철버거의 부활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6800여 만원을 모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철버거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2016년 재개점했다. 여기까지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진 영철버거 소식이었다. 5년이 흘렀고, 지난달 영철버거는 창업 20주년을 맞았다. 14일 서울 성북구 영철 스트리트 버거에서 사장 이영철씨를 만났다.

◇”마지막 돈까지 ‘영끌’해 매장 냈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부끄럽지만, 사실 2018년 또 한번 망했습니다. 여러 분의 도움으로 120평 매장을 차렸는데, 아무리 버거를 팔아도 월세 750만원이 감당이 안 되더군요. 학생들이 모아 준 돈도 다 날렸고, 개인 빚도 5억을 넘겼죠. 무엇보다 나를 믿어준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우울증에 대인 기피증까지 찾아와 4개월 동안 방에서 꼼짝을 못 했죠.”

–그런데 지금은 다시 매장을 운영하고 있네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2019년 남은 돈을 ‘영끌’해 이곳에 30평 규모의 작은 매장을 냈어요. 가족 월세방을 빼고, 딸 퇴직금까지 빌렸습니다. 고깃집을 인수해 시작했는데, 인테리어비가 없어 환풍구도 못 뗐어요. 그래도 그 나름대로 분위기 있지 않은가요?(웃음)”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오픈 전 준비를 정말 많이 했어요. 우선 기존 버거 메뉴를 다 갈아엎었고, 밤에는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형태로 꾸몄습니다. 다행히 학생들이 새 메뉴를 많이 좋아해 줘요. 1년 반 만에 빚을 3억원 가까이 갚아 이제 2억 정도만 더 치르면 됩니다.”

–코로나로 자영업이 힘든데, 영철버거는 건재한가 보군요.

“학생들 덕분이에요. 메뉴 개발부터 가격 책정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과 상의했습니다. 2020년 대학생들이 어떤 버거를 좋아할지 학생들이 알려준 거죠. 지금 메뉴판도 재학생이 만들어준 거예요. 전 재개점 후 지난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힘들 때 손 내밀어 준 학생들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어요. 얼른 빚을 갚고, 다시 학생들과 웃으며 일해야죠.”

–아직도 졸업생들이 많이 찾는다고요.

“장사를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이 많았어요. 천원짜리 버거로 한 끼를 때우는데, 그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재료를 꾹꾹 눌러 담아주기도 했고, 버거를 공짜로 주는 날도 많았죠. 그때 쌓인 유대감이 평생 가나 봐요. 내가 힘들다는 얘기가 퍼지자,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한 졸업생이 선뜻 3천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건네줬어요. 오랜 시간 취업이 안 돼 내게 의지를 많이 하던 친구였는데, 거꾸로 제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 준 거죠. 학창 시절 우리 집에서 알바를 하던 다른 졸업생은 로스쿨생 신분인데도 부산에서 올라와 내 주머니에 억지로 100만원을 넣어주는데, 눈물이 찔끔 났어요. 홀로 서울 유학을 와서 내가 밥을 자주 사주던 친구예요. 너무 고맙고 미안하죠.”

'영철버거' 창업 20년 차. 사장 이영철(52)씨 앞으로는 빚 2억여원이 남아 있다. 아내와 함께 주7일 매장을 운영한다는 그는 "그래도 나를 도와주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이씨가 지난해 새로 선보인 '돈 워리 버거'와 함께 웃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영철버거’ 창업 20년 차. 사장 이영철(52)씨 앞으로는 빚 2억여원이 남아 있다. 아내와 함께 주7일 매장을 운영한다는 그는 “그래도 나를 도와주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이씨가 지난해 새로 선보인 ‘돈 워리 버거’와 함께 웃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영철씨는 영철버거를 시작하기 전 인생을 ‘밑바닥’이라 표현했다. 1968년생인 이씨는 전남 해남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폐결핵을 앓던 아버지는 이씨가 열한 살 되던 해 세상을 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건 빚뿐이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이씨도 학교를 그만두고 형과 함께 상경했다. 생활비라도 직접 벌어보자는 요량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어떻게 살았나요.

“처음엔 친척이 알아봐 준 화곡동의 목걸이 공장에서 일했는데, 1년 만에 망했어요. 그다음부터는 말 그대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죠. 중식당부터 시작해 군복 공장, 스탠드바, 레스토랑, 포장마차까지. 그러다 지금 아내가 임신하면서 92년 막노동판에 뛰어들었죠.”

–공사 현장에선 무슨 일을 했습니까.

“벽돌 쌓는 조적공이었어요. 현장에선 ‘쓰미’라 부르죠. 그런대로 손재주가 좋아 꽤 인정을 받았어요. ‘오야지(사장)’ 다음 가는 ‘세와(작업 반장)’였고, 일당도 최고 15만원씩 받았어요. 그러다 1998년 허리 디스크가 생겨 일을 더 할 수 없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IMF 때 회사마저 부도가 났어요. 졸지에 신용 불량자가 됐죠. 월세 낼 돈도 없어 보문동에서 처가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작한 게 2000년 리어카 노점입니다. ‘영철버거’의 시작이죠.”

–오랜 시간 막일꾼으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천원 버거를 개발했나요.

“식당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으니까요(웃음). 당시 알던 재료상이 ‘외국에 나가봤더니 핫도그 빵에 고기와 양배추를 잘게 쪼개 담은 버거가 유행이더라’는 얘기를 흘리듯이 했는데, 거기 꽂혀서 연구를 시작했죠. 학생들 주머니 사정을 아니까,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더라고요. 천원이 딱 맞는다 싶었죠.”

지난 2004년 고려대 앞 '영철 스트리트 버거'에서 일하는 이영철씨. 2000년 리어카 노점으로 시작해 당시엔 작은 매장을 운영했다. /조선일보 DB
지난 2004년 고려대 앞 ‘영철 스트리트 버거’에서 일하는 이영철씨. 2000년 리어카 노점으로 시작해 당시엔 작은 매장을 운영했다. /조선일보 DB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스트리트 버거가 소위 ‘대박’을 쳤습니다.

“천원을 내면 버거에 콜라까지 무한 리필을 해준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단골이 크게 늘었죠. 하루에 버거 3천개를 판 날도 있으니까요.”

–전국에 분점도 80곳이나 냈는데, 왜 경영이 어려워졌나요.

“천원짜리 버거를 팔아 돈이 얼마나 남겠어요. 본점은 유명해진 덕에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됐지만, 분점들은 매달 적자를 수백만원씩 봤어요. 거기에 재료 값까지 오르면서 2009년 결국 스트리트 버거를 포기하고 ‘고급 수제 버거’로 리브랜딩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됐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영철버거는 언제나 1000원이었나 봐요.”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씨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씨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 겁니다”

이씨는 고대생들 사이에서 ‘기부 천사’로 이름났다. 2004년부터 고려대에 장학금 총 1억200만원을 전달했다. 경영이 나빠지던 때도 연세대와 정기 교류전을 할 때마다 공짜 버거를 뿌렸다. 빚까지 내가며 기부를 이어가는 이씨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이씨는 “내가 돈만 밝혔으면, 영철버거는 한참 전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선행도 좋지만, 장사 수완도 중요하지요. ‘좋은 일을 한 건 맞지만, 성공한 장사꾼은 아니다’라고 한다면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전 큰돈 벌 재주꾼은 못 돼요. 하지만 내가 처절히 실패했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건, 나와 웃고 울던 학생들이었어요. 그들이 없었으면 지금 영철버거가 남아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대학 앞 햄버거 장사 20년,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나는 열한 살에 집 나가 막노동판에서 굴러먹던 천한 인생이에요. 살면서 누구한테도 관심 받은 적 없었죠. 그러던 내가 장사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아들딸뻘 학생들과 맥주 한잔 놓고 인생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내 삶의 가치를 찾아준 건 학생들이에요. 제가 힘들 때 5000원, 1만원씩 모아 건네준 것도 그들이고요. 학생들에 대한 내 마음의 빚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습니다.”

이제 영철버거에 ‘천원 스트리트 버거’는 없다. 대신 이씨는 새 메인 메뉴 이름을 ‘돈 워리 버거(단품 4900원)’라 붙였다. “학생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저씨는 꼭 다시 일어설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돈 워리’라고 이름 붙였죠.” 인터뷰를 마치고 주방으로 돌아가는 이씨 표정은 여느 때처럼 밝았다.

[시크릿 대사관]

주한영국대사관 전경. 19세기 말 지어진 건물이다. 장진영 기자
주한영국대사관 전경. 19세기 말 지어진 건물이다. 장진영 기자


“모든 영국인에게 집은 곧 성(城)이다(Every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
널리 알려진 이 영국 속담처럼, 모든 영국인에게 집이란 안식처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국을 대표해 한국에 와 있는 주한 영국대사에겐 관저가 곧 그의 성(城)이지요. 서울 한복판 정동에 자리 잡은 이 성에는 얽힌 이야기도, 볼거리도 넘쳐납니다. 중앙일보의 ‘시크릿 대사관’이 두드린 성문을 사이먼 스미스 대사가 활짝 열어줬습니다. 함께 들어가시죠.

장진영 기자
장진영 기자

위의 수영장 사진, 물색이 참 예쁘죠. 갑자기 리조트 사진이 등장하는지 의구심이 일 수도 있습니다. 영국대사관에 딸린 수영장입니다. 실제로 대사관 직원 일부는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며 짧은 점심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더군요. 이 너머엔 영국이 사랑하는 스포츠, 테니스 코트도 있습니다.

대사관의 다른 건물 지하엔 금요일 저녁마다 한국 최고의 기네스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습니다. 주한 외교사절단의 사랑방 역할도 해왔죠.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빨간 벽돌 건물인 관저의 나이는 올해 118살입니다. 1890~1892년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쓰면서 주변에 다른 건물을 증축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지켜왔다고 하네요. 한국과 영국이 수교한 1882년 이듬해, 당시 주일 영국대사였던 조지 애슈턴이 당시 100파운드를 주고 사들인 한옥이 모태입니다.

조선 망국이란 아픔, 식민지의 한(恨),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한국의 고단하고 역동적인 근현대사와 함께 한 역사 유적입니다.

관저 내 계단에 선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장진영 기자
관저 내 계단에 선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장진영 기자

영국 정부는 한때 이곳 대사관에 비밀정보부(SIS) 지부를 극비리에 운영하기도 했답니다. 1892년에 2채의 건물을 완공했는데, 본관 아닌 2호 건물이 SIS 지부였던 겁니다. 2차 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정동 주한대사관을 거점으로 삼았던 역사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등장하는데, SIS의 초대 책임자인 조지 블레이크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그는 북한군에 의해 평양으로 끌려갔고, 이후 소련을 위한 이중 스파이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서명 이후 영국으로 송환됐고, 그 뒤에도 소련 스파이로 암약했죠. 그러다 신분이 발각돼 수감됐지만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한 뒤 러시아로 망명했습니다. 스미스 대사는 “아직 생존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한 영국 공관 내에 비밀정보부 서울지부를 차렸던 조지 블레이크. 그는 나중에 이중스파이가 돼 소련을 위해 암약한다.  출처=영국 정부
주한 영국 공관 내에 비밀정보부 서울지부를 차렸던 조지 블레이크. 그는 나중에 이중스파이가 돼 소련을 위해 암약한다. 출처=영국 정부

가는 곳마다 스토리로 가득한 대사관에서 스미스 대사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바로 정원입니다. 공관 메인 건물에 딸린 발코니에 서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집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이지요.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의 랜드마크 건물만 아니라면 영국의 정원에 와 있는 느낌을 선사합니다. 잔디밭을 에워싸고 있는 건 40여종의 영국 장미와 한국의 토종 소나무 등 다양한 식물군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파티가 영국대사관의 대표적 행사인데, 이곳 정원에서 갓 튀겨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먹는 걸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국 항아리와 수국이 어우러진 정원. 한국과 영국의 아름다움을 잘 녹여낸 정원이다. 장진영 기자
한국 항아리와 수국이 어우러진 정원. 한국과 영국의 아름다움을 잘 녹여낸 정원이다. 장진영 기자


영상을 통해 좀 더 감상해보시죠. 영상 속에선 스미스 대사가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깜짝 특기도 선보인답니다.


스미스 대사의 피아노와 트럼본 연주 어떠셨나요. 지금은 ‘아리랑’도 연주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부터 쳤는데, 트럼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근무하던 시절 부인이 선물해줬다고 하네요. 스미스 대사는 “연습하느라 이상한 소리를 많이 냈는데, 아내가 잘 참아줘서 고맙다”며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의 수준급 피아노 연주. 장진영 기자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의 수준급 피아노 연주. 장진영 기자
부인의 선물이었던 트럼본도 맹연습했다고. 장진영 기자
부인의 선물이었던 트럼본도 맹연습했다고. 장진영 기자

관저 안으로 들어오니, 곳곳에 전통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부터 영국이 자랑하는 조각가 헨리 밀러의 작품까지 영국의 문화를 뽐내고 있습니다. 화장실에 구비된 모든 물품도 영국 왕실에서 쓴다는 펜할리곤스며 조 말론이더군요.

관저의 응접실에 앉아 스미스 대사와의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코로나19가 질문의 첫자리를 차지했습니다.

Q : 영국의 코로나19 사태는 어떤가. 한국과의 협력은 어땠는지.
A : 한국 정부와 보건 당국에 (주한영국대사관 측에서) 질문을 수백까지는 했던 것 같다. 한국 측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 새롭고 차별화한 대처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걸 가히 ‘코비드(코로나19) 외교’라 부를만한데, 이젠 우리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서로의 경험과 교훈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Q :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두고 영국과 EU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A :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고, 시한은 명확하다. 올해 12월 31일로 브렉시트를 이뤄낸다는 것이다. EU와의 합의문에도 들어가 있고 여전히 유효한 딜이다. 협상이 실패해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건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영국 정부는 앞으로 EU와 무역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스미스 대사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며 보여준 기념패가 하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6ㆍ25 참전국에 보낸 기념패를 소중히 들어보이는 사이먼 대사. 장진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6ㆍ25 참전국에 보낸 기념패를 소중히 들어보이는 사이먼 대사. 장진영 기자


이 기념패를 소중히 들어 보이며 사이먼 대사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6ㆍ25 발발 70년째가 되는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영국은 한국을 위해 참전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참전국에 보낸 기념패를 보내줬습니다. 영국과 한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입니다. 양국 관계가 앞으로도 더욱 돈독히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영상=여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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